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동로마 제국/정체성 (문단 편집) === 그리스 식으로 사니까 로마가 아니다? === 애초에 통시적으로 관통할 수 있는 라틴적 생활양식이란 게 있는가? 없다. 애초에 '라틴인'이란 용어 자체가 로마인과는 뭔가 다른 2등 시민 내지는 의무가 더 많은 사람들이란 용어로 기원전 3세기까지 쓰였고 바로 그런 이유로 동맹시 전쟁이 일어나서 '''라틴시민권 자체를 로마시민권으로 일원화하며 라틴인 자체를 없애는 걸로 로마 국가의 발전이 이루어졌는데''', '라틴인'이 있어야 로마 제국이다? 어불성설이다. 이번에는 라틴어를 보자. 라틴어는 꾸준히 발전하면서 오히려 그리스어적 요소를 통해 고급화되어 학문 용어로도 쓰일 수 있게 되었고, 다름아닌 동로마 지역 그리스어도 꾸준한 라틴적 요소로 고대 그리스어와는 어휘도 발음도 단어들 뜻도 상당히 달라져 있었다. 그런데 기원전 5세기~기원후 6세기 로마의 라틴어가 다 똑같았다? 역시 앞뒤가 맞지 않는다. 이번에는 라틴 생활방식을 보자. '라틴 생활방식'. '''그런거 없다.''' 그런게 있었다면 로마의 생활방식 자체가 이미 꾸준히 긴 과정을 거쳐 선진 '그리스화'가 되어가는 과정이다. 기원전 5세기 공화정 로마와 기원후 2세기 오현제 시절 로마의 생활방식 또한 그야말로 완전히 별천지 수준으로 달라져 있었다. 대표적인 게 가부장권 유명무실화와 정절에 대한 사고방식, 여권신장, 공중목욕탕 문화 등이었다. 공화정 말기 때만 해도 아버지가 자식에 대해 거의 생사여탈권에 준하는 권리가 있었지만, 기원후 2세기 즈음 로마는 그런건 상상도 못할 세상이었고 오히려 부모 말을 듣지 않고 재산을 탕진하는 자녀에 대한 부친들의 하소연이 만연한 시대가 되어 있었다. 공화정기 로마 여성은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었지만 제정 전성기 때 로마 여성은 남성이 하는 건 직업면에선 못하는 게 아무 것도 없었고 자기 이름 내걸고 사업해서 대부호가 되어 바람을 피워도 남편이 모르는 척 해야만 했던 기혼 여성도 있었으며, 공화정 말기 때만 해도 원로원 의원이 아내한테 입맞춤 했다고 원로원 의원 자격까지 박탈당할 지경이었지만 제정 전성기 때 그런건 역사책에서나 나오는 이해못할 일화가 되어 있었다. 그 시기에는 부부의 애정 표현이 전혀 이상할 게 없는 시대가 되어 있었고, 정식 부인에게 진정으로 사랑받는 남편들이 여러 자료에서 등장하는 데 이 또한 전반적인 정식 부부 관계 자체가 상당히 차갑기 그지 없었던 공화정 말기 기준으로 봐선 상전벽해의 변화였다. 특히 적어도 제정기에는 '''노예를 함부로 다루는 행태가 교양 없는 인간의 대표적 특징 중 하나'''가 된 것 또한 특기할 일인데, 적어도 이는 스파르타쿠스 반란 이전 및 키케로의 여러 저술 활동 이전엔 전혀 없던 개념이었다. 이 모든 게 바로 로마의 점진적인 '그리스화' 및 '선진화'로 인해 일어난 일로, 그리스 또한 상당 부분 많은 면에서 로마화되고 있었던 바로 그것[* 대표적인 게 여성 나체 묘사. 남성 묘사를 과하게 숭상했던 원래의 고대 그리스인들은 그런건 로마인들같이 문화가 떨어지는 사람들이나 하는 짓으로 보았다. 어쩔 수 없을 때나 하는 것이지 로마인들처럼 즐겨서 하는 일로는 보지 않았기에 그리스인들은 남성 나체 묘사에만 열을 올렸었다. 그러나 그리스인들의 풍속과 습속 자체가 상당히 로마화되면서 이런 관습은 기억 저편으로 없어지게 된다.]과 맞물려서 돌아가고 있는 현상이었다. 그러니 현대 한국인 일각에서 떠올리는 로마성을 규정하는 통시적 라틴적 생활양식, 그런건 없는 것이다. 또한 공화정기 로마인들이 제정기 로마인들을 봤다면 대경실색할 만한 게 둘이나 더 있었다. 기원전 1세기 ~ 기원후 2세기 로마의 특징 중 하나가 한 해에 휴일이 엄청나게 많다는 것인데, 이 또한 공화정기 로마인들이 봤다면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 못할 일이었다. 로마 제국을 상징하는 실질강건의 상징적 요소들이 죄다 없어져 있었던 것이다. 혹자는 기원전 4세기~기원후 4세기 핵심 지배층이 라틴인이며 라틴어를 쓰고 라틴식 건물에서 라틴식 씨족제도를 갖추고 사는 것은 동일했다고 하지만 이 또한 설득력이 매우 부족한 언설이다. '라틴식 생활방식', '라틴식 건물'. 그런 게 로마성을 규정하지도 않거니와, 설령 있다고 해도 말이 되지 않는 사례가 있다. 공화정기 로마인들이 오현제 시절 로마인들을 봤다면 넋이 나가버릴 정도로 어이 없는 또 다른 문화요소 세번째가 바로, 오늘날에 대중에겐 로마 제국을 상징하는 걸로 되어 있는 공중목욕탕 문화였다. 공화정기 로마인들은 남에게 알몸 보이는 걸 상당히 수치스럽게 생각했었고, 때문에 대부분은 집에서 목욕했었다. 때문에 카토 같은 사람들은 공중목욕탕에는 아예 발걸음도 하지 않으려 할 정도였다. 그렇지만 이미 공중목욕탕은 오현제 로마 이전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의 시대부터 대중화되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고대 로마인들의 그리스적 생활양식으로 볼 것 같으면, 일단 라틴계 로마인들 자체가 상대적으로 타민족에 대해 처우가 관대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적어도 카이사르부터 시작하는 로마제국 특유의 세계시민주의의 사상적 기반은 원래 그리스 정치철학이 먼저이며 먼저 실현한 것도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대왕이었다.''' '로마는 이상적인 보편 세계를 실현하는 지고의 문명이며 나는 특정 민족에 제한되지 않는 세계시민으로서 로마인'이라는 정체성은 적어도 4차 십자군이 준동하는 1204년 전까지는 로마 제국을 관통하는 핵심 정신이었고 특히 오현제 시대만해도 황제들조차 진정한 로마적 세계시민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다. 가장 대표적인게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가 고전 그리스어로 쓴 '명상록'에 나오는, 자신은 무엇보다도 세계의 시민이라는 자기 성찰적 고백이다. '''애초에 세계시민주의가 그리스 정치철학이었는데 무슨 그게 진정한 고대 라틴적 생활양식이라도 되는 양 곡해하는 것은 그야말로 무식의 소치이다.''' 그리스 덕질했다고 욕먹는 네로나 하드리아누스와 다르게 누구보다도 로마인 중의 로마인이라 칭송받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는 어렸을 때부터 죽을 때까지 그리스 철학을 동경하며 또한 정통했고, 로마 제국의 공직자들들도 보편적으로 공공에 봉사한다는 스토아 철학을 바탕으로 살았다. '''정리하자면 제정시절 그 소위 고대 라틴 로마인들의 양대 핵심 생활 태도 2가지 '세계시민주의' '스토아철학'이 전부 그리스 문화다. 이쯤 되면 고대 서로마 부터 그리스 제국으로 부르지 않을거라면 그리스 드립 자체는 아무런 구분의 기능을 하지못한다.''' 또한 상술했듯 '라틴인'이란 개념 자체가 동맹시 전쟁 전후 해서는 상당히 차별적인 대우를 내포하는 뜻이었던 차치하더라도, 기원전 4세기부터 기원후 4세기까지 '핵심 지배층'은 연속성은 물론 있었으나 계속 바뀌고 있었다. 동맹시 전쟁 이후 '로마인' 범주에서 배제당했던 수많은 과거의 '라틴인'이 로마 핵심 지배층에 진입하기 시작했고 다름아닌 아우구스투스의 원소속 가문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게다가 마리우스와 술라, 폼페이우스와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와 안토니우스의 시대를 거치면서 장년 지배층이 꾸준히 몰살당하는 탓에 계속해서 젊은이들이 권력 중추에 등장하는 현상이 끊이지 않았으며, 당연 그러면서도 빈 자리는 과거 라틴인들의 후손들이 채우게 된다. 이후 제정기가 되면 로마 시민권을 취득한 그리스인, 갈리아인, 히스파니아인 등등이 역시 로마화되어 꾸준히 유입되는데, 그런데도 라틴인이 계속 동일했다? 그리고 그 시기 로마인들은 계속해서 그리스어를 상용했으며, 라틴식 씨족제도는 벌써 원수정 초기 때부터 유명무실해져가고 있었다. 그러니 라틴어를 쓰는 라틴식 씨족제도에 속한 라틴인이 계속 중추에 있었다고 하는 개념 또한 허상에 불과하다. 설령 그런 게 있었다 쳐도, 그런 개념을 당대 로마인들이 승인한 바 없었으니 이 또한 현대 한국인 중 일각에서 하는 역사학과 무관한 얘기에 불과하다. 7세기 이후 동로마가 그전 로마와는 성격이 어느 정도 달라졌다는 건, 그때 이후 동로마가 지중해 전체에 영향력을 미치는 패권을 지니지 못했고 이슬람 제국이 급부상해 지중해 패권을 행사했고 이후 지중해 문화의 헤게모니를 이끌어나가게 되었기에 달라졌다는 것이지, 7세기 이후 로마가 그전과 정체성이 달라져서가 아니고, 로마성이 없어서도 아니다. 시간 흐름에 따라 점점 더 멀어진다는 '원래의 로마적 토대'란 것 따위가 애초에 없음도 상술했듯 유념할 사항이다. 물론 국가는 당대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영역에서 계속 점진적으로 발전해나가니, 기원후 13~15세기 로마의 특징을 추출해보면 대중에게 유명한 기원후 1~2세기 로마와는 아무 공통점이 없는 게 당연하다. 세월이 천 년이나 차이가 나는데 같은 데가 있으면 그걸 호모 사피엔스의 나라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그리 따지면 당장 기원후 1~2세기 로마도 기원전 5~4세기 로마와 군사문화, 인종구성, 정치 체제, 경제, 인문문화 등 별 공통점은 없다. 그런 식으로 계속 가면 진짜 로마는 기원전 8세기에 로물루스가 건국한 그 로마만 남겠지만 이런 주장은 상식 있는 이라면 아무도 하지 않는다. 동로마 제국이란 국가가 자체로 아주 강력한 역동성에 의해서 발전한 큰 역량을 보인 것과, 동로마 제국이 로마 제국이기도 하다는 FACT는 서로 관련이 없기 때문이다. 국가는 변화하는 현실에 따라 적응과 변천, 통합과 흡수를 반복하는 실체지, 누군가의 자의적 관념에서 어떤 특정 몇몇 요소나 특정 시기로 고정되어 늘 그 환경 그 조건에 맞춰 상연되는 테마파크가 아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